#. ㈜테크인모션 천재일우(千載一遇)는 아니더라도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기회는 온다고 한다. 그 기회를 놓치느냐 붙잡느냐가 성공한 인생을 가늠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누구에게나 반전 드라마 같은 기회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포착을 허락하는 법이다. 주정민(37) ㈜테크인모션 대표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특이하다. 남들처럼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기회를 기다린 것이 아니다. 그의 부지런함이 그 기회를 절대 떠나보내지 않았다.
◆우연찮게 찾아온 기회를 붙잡은 그의 부지런함 주정민 대표는 애초부터 CEO를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범하게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그 자체였다. 그의 첫 직장은 음성인식 솔루션 등을 다루는 IT 관련 중소기업이었는데 그 기업이 곧바로 대기업으로 합병되면서 얼떨결에 대기업에 취업하게 됐다. ‘어안이 벙벙’하는 사이에 그의 목엔 대기업 사원증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피합병회사 출신이어서일까. 그는 고향인 서울을 뒤로하고 대전으로 발령이 났고 연고도 없이 유성에서 근무하게 됐다. 당시 유성은 막 개발이 한창이었던 곳으로 주 대표의 눈엔 고향인 서울과 비교했을 때 시골이나 마찬가지였다. 피 끓는 청춘을 시골에서 보내게 되니 답답할 노릇이었지만 출근과 퇴근외엔 딱히 할 게 없었다. 본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다 보니 프리랜서처럼 일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고 외주를 통해 들어오는 다른 일을 처리하면서 쳇바퀴 도는 생활을 하던 차에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됐다. ‘일을 도와줄 인력이 필요한데 두 달 정도 도와줄 수 있느냐’는 취지였다. 마땅히 할 것도 없이 빈둥대느니 일이라도 하자는 마음에 바로 수락했다. 장소는 유성에서 멀지 않은 계룡대였다. 계룡대에서 지인이 부탁한 기간까지 성심성의껏 일을 도왔고 마땅히 할 일도 없겠다 싶어 부탁한 날을 넘겨 두어 달 정도 더 일을 거들었다. 부지런한 그의 모습에 계룡대 관계자는“필요할 때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 정말 최고지”라고 덕담을 건넸다. 그 사람의 덕담은 감사인사 그 이상의 뜻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당시 주 대표는 그냥 웃어른이 하는 고마움의 표시 정도로만 여기고 웃어넘겼다. 하지만 그의 성실한 모습은 계룡대 관계자가 건넨 감사인사 그 이상의 기회를 붙잡고 있었다.
◆창업 후 다시 군으로 주 대표는 계룡대에서 모든 일을 마친 뒤 ‘목원대 창작터’에서 창업 관련 교육을 받아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지난 2011년 그렇게 주 대표는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 관련 교육을 이수하기 시작했다. 교육은 상당히 체계적이었고 경영에 대한 이론 수업을 모두 마친 뒤 본격적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업종은 과거 경험을 살린 통신 및 음성인식 솔루션 전문 업종이었다. ㈜테크인모션의 야심찬 발걸음이 이제 막 떨어졌지만 창업자라면 누구나 겪는 수주의 어려움이 곧바로 찾아왔다. 간혹 수주가 들어와도 계약금 이상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그의 열정 때문에 ㈜테크인모션은 제대로 된 수익을 낼 수 없었다.
“가령 1억 원짜리 수주를 받았는데 중간에 고객의 요구사항이 접수되면 돈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다 수용했어요. 신생기업이다 보니 고객이 원하는 걸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욕심이었죠. 나중에 일을 다 마치고 보니 5000만 원이나 손해 본 적도 꽤 있었습니다.”
좀처럼 수익이 나지 않을 때 과거 계룡대에서 만났던 관계자와 연락이 닿았다. 해군에 납품할 물건을 주문하고 싶은데 예전에 봤던 성실함이 기억 남았다고. 금액은 크지 않았지만 곧바로 일을 수주 받은 주 대표는 연구개발에 착수한 뒤 해군에 성공적으로 납품했다. 해군 납품이 성공하자 ‘㈜테크인모션 제품의 성능이 뛰어나고 대표 역시 성실하다’는 입소문이 관계자들 사이에서 돌기 시작했다. 이후 해군은 물론 육군과 공군까지 그의 비즈니스 영역은 점점 넓어졌다. 일종의 카르텔이라고 할 정도로 육·해·공군은 거래하던 회사를 쉽게 교체하지 않는데 주 대표는 그 벽을 뚫어낸 것이다.
각을 중요시하는 군은 대금지불에 있어서도 칼 같았기 때문에 대금 미납은 전혀 걱정되지 않았고 ㈜테크인모션은 고속성장을 이루기 시작했다. 연매출은 10억 단위를 넘어갔고 지난해엔 중국으로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지난해 연매출은 18억 원까지 찍었고 올해 초엔 지금의 대덕테크비즈센터에 입주했다.
◆성공적인 업계에서의 안착, 보이지 않는 어려움 이제 막 창업을 시작한 이들이 볼 땐 주 대표가 마냥 부러워 보일 수 있다. 창업하자마자 큰 어려움 없이 사업을 성장시켰고 거기에 사업 파트너가 대금 미납 걱정 없는 군이었으니. 하지만 그에게도 나름 고충이 있었다. 군에게 있어서 최고로 치는 사안은 칼 같은 오와 열이 아니라 보안이기 때문에 수주가 들어오면 연구개발을 위해 군부대에 길게는 1년 6개월 동안 상주해야 했다. 워낙 상주하는 기간이 길어 사병이 입대해 병장까지 달고 제대하는 모습을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란다. 또 군 장병들과 동고동락하면서 끼니는 소위 ‘짬밥’으로 때워야 했다고. 그나마 다행인 건 사병식당이 아닌 간부식당에서 식사한다는 것이었지만 사식은 늘 그리웠다.